1989년 광주

 

어느 한 건설회사 직원이 회사를 나와 자본금 1억으로 직원 5명을 고용해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 작은 회사는 2021년 현재 자산총액이 12조가 넘는 대한민국 기업 재계 35위의 대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30년 만에 한강의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이룬 호반그룹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 작은 회사가 단기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사가 되었을까요?

 

 

호반그룹의 회장인 김상열 회장은 1989년 28살의 나이로 호반건설을 설립하게 됩니다

 

 

시작은 호반맨션아파트라 불리는 광주 외곽의 임대아파트 사업이었습니다

 

광주 북구 삼각동 호반맨션

 

운 좋게도 분양은 완판되었고 이때 보유하게 된 현금자산은 사업 확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대부분 빚을 내서 그돈으로 시행을 하고 선분양 후건설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흐름은 IMF때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죠

 

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늘여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호반에게 IMF는 오히려 기회였던 거죠

 

호반건설은 IMF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싼값에 땅을 구입해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임대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대거 분양하게 됩니다

 

호반 리첸시빌

 

 


 

그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합니다

 

김영삼, 노태우 정부 때 서울 외각에 신도시 개발을 통해서 주택 보급을 했다면 김대중 정부의 보급사업은 임대가 중심이었습니다

 

또한 김대중 정권의  '국민의 정부'는 타지방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딘 호남지방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 결과로 호반뿐만 아니라 호남 건설사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죠

 

 

 

호반건설의 매출은 1999년 38억 원에서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988억 원

 

중흥건설의 매출은 1999년 456억 원에서 2000년 매출 864억 원

 

우미건설의 매출은 1999년 293억 원에서 2000년 1077억 원

 

 

호남의 중흥건설과 우미건설

 

 

호반, 중흥, 우미뿐만 아니라 부영까지 호남 건설사들에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바로 '김대중 정부'입니다

 

호남을 지역의 건설사들이 막대한 지원과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통계만 봐도 이를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의 건설사들이 분당, 판교, 일산 등 수도권 지역에 대거 진출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때 대구, 경북의 중견 건설사인 청구, 우방, 건영 등은 이 주택사업으로 건설사 시공평가 순위가 30위권 안팎으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재무상태가 나빴던 청구, 우방 등은 금융위기 때 줄도산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호반은 달랐습니다

 

김상열 회장의 경영원칙 때문입니다

 

분양하고 있는 아파트의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을 경우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다

 

 

일명'90% 룰'이라 부르는 이 규칙을 철저히 지켜온 결과 호반건설은 다른 건설사들과 비교해 부채비중이 적어 안정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런 전략이 운 좋게 IMF 때 빛을 발했고 김대중 정부의 지원 아래 큰 성장을 하게 된 호반은 이제 수도권으로 진출합니다

 


 

호반이 대기업으로 바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2기 신도시 계획입니다

 

2기 신도시 계획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서울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계획되었고 2007년 대다수의 개발계획이 세워졌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로 부동산 시장은 하락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건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정부는 공공택지를 싸게 분양했죠

 

1군 건설사들은 주택사업의 수익이 약해서 입찰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호반은 달랐습니다

 

'이 당시 건설업체들 사이에서 아파트를 지으면 바보다'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지만 호반은 역발상을 한 거죠

 

특히 호반은 이 사업에서 특별한 전략으로 신도시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소평 평수만 지어서 실소유자를 노린다, 그리고 90% 룰

 

아파트를 싸게 많이 팔고 철저히 안전한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입니다

 

서울과의 먼 거리, 미흡한 교통, 부족한 편의시설 등 신도시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고 일부 신도시는 미분양의 무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반의 이런 전략은 실패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결과 호반은 신도시 공공주택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지금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호반건설 서초 신사옥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었죠

 

 

한국 토지주택공사(LH)는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아파트 용지를 분양할 때, 대부분 추첨제로 진행합니다

 

단순 추첨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입찰에선 많은 업체의 명의로 참여할수록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2기 신도시 때 호반은 무려 43개나 되는 계열사를 설립했습니다

 

대다수가 직원이 10명도 채 안 되는 페이퍼컴퍼니였죠

 

2011년 11월에 진행된 동탄 2 신도시 A-30블록에 입찰한 18개 건설사 중 16곳(88.9%)이 호반건설 계열이었습니다

 

또한 2014년도 6월에 입찰이 진행된 동탄 2 신도시 A-41블록에선 35개 건설사 중 호반건설 계열사가 22곳으로 전체의 62.9%나 차지했습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2008년부터 10년간 LH 공공택지의 10프로가량을 저렴한 가격에 입찰받아 아파트를 짓고 막대한 수익을 챙겼습니다

 

한 건설사가 10년간 전체 분양 택지의 10프로가량을 낙찰받는 것은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던 거죠

 

이 기간 동안 호반의 시공능력 평가 순위도 비약적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호반건설의 성장 상승세

 

 

호반뿐만이 아니라 중흥건설, 우미건설 등도 이와 같은 똑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입찰에 성공하였습니다

 

 

토지 매입 상위 5개 건설사

 

 

총자산이 10조가 넘는 1군 건설사들은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많이 받기 때문에 계열사를 동원한 입찰은 어렵습니다.

 

위와 같은 중견회사의 편법으로 인해 1군 건설사들의 신도시 사업은 어려워지고 재건축, 재개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신도시에 1군 건설사들이 많이 없는 이유입니다

 

편법(불법은 아니지만)을 관행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호반

 

이런 식의 편법은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갑니다

 

특정 건설사들의 편법적인 독점은 아파트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재계 35위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그룹으로 성장한 호반.

 

그 성장의 바탕에는 분명 호반 건설의 큰 노력이 있을 것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세웠기에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을 테죠

 

하지만 그 성장의 과정이 투명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과오에도 불구하고 호반건설이 아파트 품질을 높이는 사업을 계속해나간다면

 

좋은 평가를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호반 건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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