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예전부터 부촌 동네로 알려진 대표적인 곳이 몇몇 있습니다

 

수영구 남천동, 동래구 온천동, 서구 대신동

 

지금도 일명 "해수동 (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이라 불리며 부산의 상급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부산은 동부산과 서부산의 차이가 조금은 심한 편입니다

 

해운대, 광안리를 비롯한 바다 해안 라인, 동래구, 연제구를 비롯한 내륙라인 등 

 

부산 부동산 시세의 상위권은 항상 동부산 쪽에 몰려있습니다

 

반대로 서부산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낮은 가격과 함께 소위 잘 사는 동네라는 인식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그 서부산에 예전부터 전통의 부촌이라 불리는 대신동이 있습니다

 

전혀 부촌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법한 서구 대신동이 왜 부촌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옛 부산의 중심지가 서부산 즉,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였기 때문입니다

 

부산이 현대적인 도시로 탄생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입니다

 

조선시대 단순히 왜관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거주지역이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일본과의 교통이 편리한

 

서부산 중구, 서구 등 이 일대가 자연스레 부산의 중심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과거 부산시청

부산시청 또한 연제구로 옮기기 전 현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리에 위치해 있었고

 

서구에 위치한 일제강점기 때 지은 현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건물은 경남도청으로 , 6.25 전쟁 때는 임시수도 정부청사,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 후 2001년 연제구로 옮기기까지 부산지방법원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옛 경남도청, 부산지방법원, 임시수도 정부청사

 

 

 

교통의 중심 또한 서부산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때 부산역과 1960년대의 충무동 시외버스터미널

1953년 부산역 화재가 나기 전까지 지금의 위치보다 조금 더 원도심이었던 중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부산 최초의 시외버스터미널 또한 중심지였던 충무동에 처음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롯데 자이언츠의 예전 홈구장이었던 구덕야구장을 포함한 구덕운동장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해수욕장인 송도해수욕장

 

등 문화적인 부분까지 완벽한 원도심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구덕운동장 , 송도해수욕장

 

이처럼 과거 부산의 중심지였던 이곳에서 배산임수가 훌륭했던 대신동 일대에 사장, 고위직 등이 거주하면서 

 

전통의 부촌이 되었던 것입니다

 

대신동에 위치한 옛 고급주택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옛 동래 지역권 발전과 더불어 서면 일대 발전으로 인한 번화가 중심지 이동

 

부산시청, 부산지방법원 등 공공기관 이전, 문현금융단지 조성으로 인한 한국은행과 금융기간들의 이동

 

부산신항으로 인한 항만기관 이전, 부산국제영화제 센텀시티로 이전 등 

 

점점 부산의 중심지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긴 암흑기를 지나고 현시점에선 서구 대신동의 미래는 밝습니다

 

이미 2010년대 초반 대신동 재개발로 인해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대신 푸르지오, 대신 더샵 등 메이저급 건설사들의 아파트가 대신동의 시세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대신 더샵, 대신 푸르지오

 

또한 구덕운동장 재개발, 지방 첫 의료관광특구 지정 도전, 천마산 관광개발, 공동어시장 현대화 사업 등 서구의 호재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천마산 복합 전망대 예상 조감도와 관광모노레일 노선
4개의 종합병원이 한곳에 모여있는 서구, 공동어시장 현대화 조감도

 

 

동대신 삼익아파트 재건축송도 힐스테이트 이진베이시티의 존재감도 서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동대신동 삼익아파트

 

이미 1970년대 부산 최고 고급 아파트 중 하나였던 동대신 삼익이 평지, 초역세권, 초품아 등

 

좋은 입지를 등에 업고 향후 서부산의 대장 아파트를 향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대신동 야경과 부촌예상지역

 

2017년 부동산 전문가 5인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연구위원, 김은진 부동산 114 리서치팀장,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 자문단 부동산 수석위원,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아기곰 칼럼니스트)

 

이 밝힌 10년 후 부촌 예상 지역에 부산에서 해운대에 이어 부산 서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과연 전문가들의 예상으로 부산 서구, 서구의 대신동이 과거 부촌의 영광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1989년 광주

 

어느 한 건설회사 직원이 회사를 나와 자본금 1억으로 직원 5명을 고용해 회사를 설립합니다

 

그 작은 회사는 2021년 현재 자산총액이 12조가 넘는 대한민국 기업 재계 35위의 대기업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30년 만에 한강의 기적과도 같은 성과를 이룬 호반그룹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 작은 회사가 단기간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건설사가 되었을까요?

 

 

호반그룹의 회장인 김상열 회장은 1989년 28살의 나이로 호반건설을 설립하게 됩니다

 

 

시작은 호반맨션아파트라 불리는 광주 외곽의 임대아파트 사업이었습니다

 

광주 북구 삼각동 호반맨션

 

운 좋게도 분양은 완판되었고 이때 보유하게 된 현금자산은 사업 확장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대부분 빚을 내서 그돈으로 시행을 하고 선분양 후건설을 하는 시스템입니다

 

이런 흐름은 IMF때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죠

 

하지만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늘여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호반에게 IMF는 오히려 기회였던 거죠

 

호반건설은 IMF 여파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싼값에 땅을 구입해 호반리젠시빌이라는 임대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대거 분양하게 됩니다

 

호반 리첸시빌

 

 


 

그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합니다

 

김영삼, 노태우 정부 때 서울 외각에 신도시 개발을 통해서 주택 보급을 했다면 김대중 정부의 보급사업은 임대가 중심이었습니다

 

또한 김대중 정권의  '국민의 정부'는 타지방에 비해 발전 속도가 더딘 호남지방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 결과로 호반뿐만 아니라 호남 건설사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죠

 

 

 

호반건설의 매출은 1999년 38억 원에서 김대중 정부 말기인 2002년 988억 원

 

중흥건설의 매출은 1999년 456억 원에서 2000년 매출 864억 원

 

우미건설의 매출은 1999년 293억 원에서 2000년 1077억 원

 

 

호남의 중흥건설과 우미건설

 

 

호반, 중흥, 우미뿐만 아니라 부영까지 호남 건설사들에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바로 '김대중 정부'입니다

 

호남을 지역의 건설사들이 막대한 지원과 특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통계만 봐도 이를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의 건설사들이 분당, 판교, 일산 등 수도권 지역에 대거 진출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때 대구, 경북의 중견 건설사인 청구, 우방, 건영 등은 이 주택사업으로 건설사 시공평가 순위가 30위권 안팎으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재무상태가 나빴던 청구, 우방 등은 금융위기 때 줄도산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호반은 달랐습니다

 

김상열 회장의 경영원칙 때문입니다

 

분양하고 있는 아파트의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을 경우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다

 

 

일명'90% 룰'이라 부르는 이 규칙을 철저히 지켜온 결과 호반건설은 다른 건설사들과 비교해 부채비중이 적어 안정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런 전략이 운 좋게 IMF 때 빛을 발했고 김대중 정부의 지원 아래 큰 성장을 하게 된 호반은 이제 수도권으로 진출합니다

 


 

호반이 대기업으로 바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2기 신도시 계획입니다

 

2기 신도시 계획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때 서울 집값 급등을 막기 위해 계획되었고 2007년 대다수의 개발계획이 세워졌죠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로 부동산 시장은 하락장을 맞이하게 됩니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건설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정부는 공공택지를 싸게 분양했죠

 

1군 건설사들은 주택사업의 수익이 약해서 입찰에 뛰어들지 않았지만 호반은 달랐습니다

 

'이 당시 건설업체들 사이에서 아파트를 지으면 바보다'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지만 호반은 역발상을 한 거죠

 

특히 호반은 이 사업에서 특별한 전략으로 신도시 사업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소평 평수만 지어서 실소유자를 노린다, 그리고 90% 룰

 

아파트를 싸게 많이 팔고 철저히 안전한 방법으로 사업을 진행한 것입니다

 

서울과의 먼 거리, 미흡한 교통, 부족한 편의시설 등 신도시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고 일부 신도시는 미분양의 무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반의 이런 전략은 실패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결과 호반은 신도시 공공주택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지금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기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호반건설 서초 신사옥

 


 

 

여기까지만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었죠

 

 

한국 토지주택공사(LH)는 신도시 등 공공택지에서 아파트 용지를 분양할 때, 대부분 추첨제로 진행합니다

 

단순 추첨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입찰에선 많은 업체의 명의로 참여할수록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2기 신도시 때 호반은 무려 43개나 되는 계열사를 설립했습니다

 

대다수가 직원이 10명도 채 안 되는 페이퍼컴퍼니였죠

 

2011년 11월에 진행된 동탄 2 신도시 A-30블록에 입찰한 18개 건설사 중 16곳(88.9%)이 호반건설 계열이었습니다

 

또한 2014년도 6월에 입찰이 진행된 동탄 2 신도시 A-41블록에선 35개 건설사 중 호반건설 계열사가 22곳으로 전체의 62.9%나 차지했습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2008년부터 10년간 LH 공공택지의 10프로가량을 저렴한 가격에 입찰받아 아파트를 짓고 막대한 수익을 챙겼습니다

 

한 건설사가 10년간 전체 분양 택지의 10프로가량을 낙찰받는 것은 상상도 안 되는 일이었던 거죠

 

이 기간 동안 호반의 시공능력 평가 순위도 비약적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호반건설의 성장 상승세

 

 

호반뿐만이 아니라 중흥건설, 우미건설 등도 이와 같은 똑같은 방법으로 수많은 입찰에 성공하였습니다

 

 

토지 매입 상위 5개 건설사

 

 

총자산이 10조가 넘는 1군 건설사들은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많이 받기 때문에 계열사를 동원한 입찰은 어렵습니다.

 

위와 같은 중견회사의 편법으로 인해 1군 건설사들의 신도시 사업은 어려워지고 재건축, 재개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신도시에 1군 건설사들이 많이 없는 이유입니다

 

편법(불법은 아니지만)을 관행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호반

 

이런 식의 편법은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로 돌아갑니다

 

특정 건설사들의 편법적인 독점은 아파트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재계 35위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그룹으로 성장한 호반.

 

그 성장의 바탕에는 분명 호반 건설의 큰 노력이 있을 것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전략을 세웠기에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을 테죠

 

하지만 그 성장의 과정이 투명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과오에도 불구하고 호반건설이 아파트 품질을 높이는 사업을 계속해나간다면

 

좋은 평가를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호반 건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현대 디에이치, 푸르지오 써밋, DL이앤씨 아크로, 롯데 르엘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이름들

바로 1군 건설사들의 하이엔드 브랜드입니다





 

 

대형 건설사들은 각자 기존 아파트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최고의 품질과 성능으로 차별화된 주거 공간을 선사한다는 의미를 담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론칭해 오고 있습니다

특별함을 담아 각 건설사마다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조건을 세워두었습니다

입지나 발전 가치, 주변 시세 등을 고려해서 결정을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한강변에 위치한 소위 강남 등 땅값이 비싼 지역에 하이엔드 브랜드 아파트가 많이 건설되어 왔습니다

이는 건설사들이 강남권 재건축, 재개발 수주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를 런칭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찌 됐건 하이엔드 브랜드는 이렇게 성공을 합니다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하지만 누구나 살 수 없는 고급 아파트의 이미지를 남기고..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건설사들의 해외 사업에 차질이 생기자

주요 1군 건설사들은 국내 주택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특히 노후주택이 많아지고 있는 현 국내 부동산 특성상 도시정비 사업의 비중은 날이 갈수록 증가되고

이 과정에서 각 건설사들 간의 수주 경쟁 또한 점입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설사들은 수주의 성공을 위해 브랜드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건설사들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하이엔드 아파트 입니다.

DL이앤씨 아크로 드레브372와 롯데건설 르엘

 

 

최근 DL이앤씨가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 6구역 재건축 정비 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신규 브랜드드레브372를 제안했습니다

곧바로 경쟁자인 롯데건설이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을 제안하자

다시 DL이앤씨는 기존에 제안했던 드레브372에 아크로를 추가하여 '아크로 드레브 372'로 맞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대치 2지구 등 강남권에만 적용됐던 롯데건설 르엘

서부권에 해당하는 북가좌 6구역에 하이엔드 브랜드를 제시한 것,

DL이앤씨가 강북 지역에서 아크로 브랜드를 붙인 건

한강변에 있는 성수동 '성수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1구역 아크로원 하이드 조감도

 

또한 DL이앤씨는 지난 3월 부산 재건축 정비시장의 대어로 손꼽혀온

해운대구 우동 1구역(삼호가든) 재건축 정비 사업에 비수도권 최초로 ‘아크로’ 브랜드를 제시해 일찍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특별함, 희소성 보다 수주를 위한 경쟁 무기로 바뀌게 된 것이죠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재개발조합과 건설사 간의 갈등입니다

재건축, 재개발 곳곳에 하이엔드 브랜드를 내세우니

일부 지역 조합에서 무리하게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 중구 신당 8구역 재개발조합은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의 적용 문제로 DL이앤씨와 계약 해지를 결정하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서울 동작구 흑석 9구역 재개발조합 또한 설계변경화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문제로 갈등이 지속되자

결국 시공사인 롯데건설과의 해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성북구 신월곡 1구역 재개발 조합도 시공사인 롯데건설, 한화건설 컨소시움에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해 달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조합 내부에선 시공사 해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내심 미소를 짓는 건설사도 있습니다

삼성물산의 래미안과 GS건설의 자이

 

 

삼성물산과 GS건설은 아예 고급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GS건설의 경우 별도의 고급 브랜드 없이 '자이' 브랜드로 계속 일원화 하기로 했습니다

일부 단지에 '그랑자이' 라는 이름이 붙긴했으나 '자이'와 별도의 브랜드는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래미안의 경우에도 래미안 뒤에 특색있는 이름을 붙혀 고급화가 파생될뿐 브랜드의 이원화는 아니였습니다

두 건설사 모두 결과적으로 브랜드를 이원화 하지 않은것이 다행이게 된거죠

이러한 움직임은 건설사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남발한 탓에

이를 요구하는 지역이 많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죠.


강남권 수주를 위해 만든 하이엔드 브랜드가 점점 탈강남화가 되고 있습니다

꼭 하이엔드 브랜드가 강남에만 있으란 법은 없습니다

건설사 내부 적용 기준에 부합되고 주변 환경이 받쳐준다면 못 지을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도 없이 단지 경쟁의 우위로만 쓰인다면 하이엔드 브랜드가 가지는 특별함과 희소성은 점점 잃게 될 것이며 브랜드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되겠죠

하이엔드 브랜드가 꼭 정답이 아닙니다

일반 브랜드 아파트라도 입지 뛰어나고 조합원들의 노력으로 고급화를 진행시킨다면

충분히 하이엔드에 버금가는 아파트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하이엔드 브랜드인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세계박람회. World's Fair

Exposition internationale의 줄임말로 흔히 Expo라고 합니다

월드컵, 하계 올림픽에 이어 세계 3대 축제에 들어가는 엑스포


부산시가 과거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좌절된 하계올림픽 유치를 사실상 포기하고 엑스포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의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집입니다

즉 부동산이죠

부산 시민들 중에 엑스포 유치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계적인 큰 행사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부산시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리고 부산시의 발전은 부동산에도 큰 영향을 끼치겠죠

왜 엑스포 개최가 부산 부동산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이걸 알기 전에 먼저 2030 엑스포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두 번의 엑스포를 개최했습니다

1993년 대전엑스포, 2012년 여수엑스포


1993년 대전 엑스포와 2012년 여수 엑스포



하지만 이 두 엑스포들이 1800년대부터 존재하던 만국박람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진짜 엑스포가 아니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세계박람회는 등록박람회(Registered Exhibition, World's Fair) 와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ion, International Expo)로 나눠져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규모입니다

등록박람회는 0과 5로 끝나는 해에만 개최되는 박람회로 전시 기간이 무려 최대 6개월입니다

또한 전시규모도 무제한, 박람회마다 각 주제가 있지만 그에 한정되지 않고 일반적인 주제도 가능하여 다양한 분야의 전시가 가능합니다

각국의 전시관은 그 참가국이 직접 비용을 내고 설계 합니다



반면 인정박람회는 등록박람회가 개최되는 그 사이에 개최되는데 최대 3개월만 개최가 가능하고 전시규모도 제약을 받습니다

또한 명확한 주제를 갖고 전시를 기획해야 합니다

각국의 전시관도 개최국이 건축해 제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등록박람회의 개최로 예상되는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 달이 채 안되는 올림픽, 월드컵에 비하면 6개월은 엄청난 기간입니다

2010년 중국 상하이,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는 이 세계박람회 이후 세계적인 비즈니스 도시와 관광 도시로 거듭나고
특히 중국 상하이는 엑스포를 통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은 이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더욱더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상하이와 같은 해양수산·금융· IT ·항공산업이 발달한 비즈니스 중심의 국제 도시로도 명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엑스포와 가덕 신공항은 필연적 관계입니다

이미 특별법으로 통과된 가덕 신공항은 엑스포를 등에 업고 더욱더 빠르게 추진될 수 있는 거죠

엑스포와 마찬가지로 가덕 신공항이 부산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큽니다

부산 전 지역의 호재이며 서울, 수도권 및 전국의 투자자들의 부산으로 눈을 돌리게 될 겁니다

특히 엑스포 개최로 인한 초량 북항 일대의 호재와

가덕 신공한 건설로 인한 강서구 명지 에코델타시티가 호재로 손꼽힙니다

네 맞습니다 부산 전 지역 중에 특히 가덕 신공항과 가까이 있는 지역들은 더 큰 이득을 보겠죠

동구 초량 북항일대와 강서구 명지 에코델타시티의 조감도



자기 집 앞에 이런 게 생기는데 집값이 안 올라가면 이상한 겁니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합니다


바로 부(산) 울(산) 경(상남도) 동남권 메가시티

넓게는 경북까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인구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 있습니다

서울 소재 대기업의 비중은 무려 90프로 넘습니다

대한민국은 서울, 수도권의 나라입니다

지방이 설자리가 없는 거죠

이런 문제의 심각함은 대한민국 정부가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대안이 지방분권화, 그 첫 번째는 바로 부울경 메가시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울경 메가시티의 중심은 바로 부산이 될 것입니다

전세계 메가시티 증가 추세



전 세계는 이미 메가시티 경쟁시대로 들어갔습니다

부울경도 2040년 동남권 메가시티를 목표로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2040년까지 가능하게 될까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결정짓는데도 20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동남권 메가시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교통입니다

기차든 전철이든 지하철이든 깔아만 놓으면 알아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의 그 수많은 전철 노선도를 보면 알 수가 있죠



그래서 가덕도 신공항이 중요합니다

공항이 생기면 부울경에 있는 큰 도시들이 연결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 공항 건설을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바로 2030 부산세계박람회입니다

확정이 되면 어떻게든 2029년 안에 공항을 완성 지어야 합니다

그 큰 행사에 수많은 외국 방문객들을 24시간 국제공항 하나 없이 맞이할 순 없겠죠??


이처럼 엑스포가 주는 선물은 너무나도 큽니다

서울 = 부산, 수도권 = 영남권 의 공식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가덕도 신공항, 부울경 동남권 메가시티 언젠가는 될 것입니다

그 언젠가가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50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거죠

하지만 엑스포가 개최되면 부울경 동남권 메가시티를 최소 10년 이상은 앞당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2030 부산 월드 엑스포

남은 기간 동안 철저한 준비 속에
개최 성공이라는 큰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건설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건설사들은 각자의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건설사들의 아파트 브랜드



아파트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걸로 뭐를 보시나요?

지하철역이 가까운 역세권, 초등학교를 품은 초품아, 1000세대 이상 대단지 등

소위 '브역대신초' 라는 말이 있습니다.

브랜드, 역세권, 대단지, 신축, 초등학교

이 중에서 첫 번째 브랜드

브랜드의 가치는 생각보다 아파트 가격에 많은 부분을 미치고 있습니다.

괜히 1군건설사 아파트가 비싼 게 아니죠.

그 1군건설사의 브랜드 중 최고라 불리는 삼성물산의 래미안



서울, 수도권에서 래미안의 힘은 그야말로 대단합니다.

높은 선호도와 함께 엄청난 가격, 삼성이라는 그 이름 하나로 모든 게 설명이 될 정도입니다

재건축, 재개발에서도 압도적인 힘으로 서울의 주요입지에서 많은 수주권을 따내고 있습니다


부산에도 래미안이 있습니다.

해운대 래미안, 장전 래미안



단 두 군데 뿐입니다

물론 부산에 삼성이 지은 아파트는 더 많이 있습니다.

대연동 삼성아파트, 좌동 삼성아파트, 망미동 삼성아파트, 남산동 삼성아파트, 만덕동 삼성아파트, 학장동 삼성아파트 등과 같이 90년대 초중반까지 완공된 아파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파트들을 래미안이라 부르진 않습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삼성아파트죠.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는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브랜드 열풍이 시작된 2000년대부터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2014년 처음 래미안 해운대가 생겼습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부산에는 래미안이 없었던 거죠.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에서 왜 래미안은 없었을까요??




래미안이 오랜 시간 동안 부산에 없었던 그 첫 번째 이유는

삼성물산의 전략 방향 때문입니다

삼성물산의 전략은 수도권 재건축, 재개발 수주에 집중하고 그 일대를 래미안 타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삼성물산의 이런 전략은 사업성, 즉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텃세가 심한 지방보다는 자신의 안방인 수도권에 집중하는 편이 삼성물산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하게 느낄 것입니다

또한 이미 서울, 수도권에 여러 성공 사례의 래미안 단지들이 많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 또한 상당히 좋습니다.

그 결과로 주요 입지의 도시정비사업, 즉 재건축 재개발지역에 수주를 쉽게 따내고 있는 것입니다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타운과 서초구 래미안타운







두 번째 이유는

각 지역 건설사들의 강세입니다


래미안은 수도권 비중이 무려 90% 이상으로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한 브랜드입니다.

지방 분양은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적고 심지어 호남 지방에서는 2000년도 래미안 론칭 이후 단 한 번도 아파트를 짓지 않았습니다.

래미안이 안 들어온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사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죠.

부산과 호남지방의 대표 건설사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사업성이 수도권에 비해 크지 않는 지방에서 굳이 지역 건설사들과 경쟁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비록 사업성이 있다 하더라도 지역주민 민원, 과다 경쟁 등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단지들은 피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는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입니다



이 사고가 지난 2000년대 초반 부산에서 래미안을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1993년 경부선 구포역에서 북쪽으로 700미터 떨어진 곳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전복 및 탈선되는 사고입니다
이 사고로 총 78명 사망, 198명 부상을 당해 최악의 철도사고로 기록에 남게 되었습니다

구포역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

삼성물산-건설부문의 전신인 삼성종합건설이 사고 현장 근처 지반 아래 지하전력구 설치를 위해 발파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철도법상 선로 주위 지하물 공사의 경우 철도청 주관하에 시공하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 이를 무시한 채 어떠한 통보도 없이 발파를 진행하여 결국 노반이 침하해 선로 지반이 무너져 철로가 4-5미터 정도 함몰하는 대참사가 발생하게 된 것이죠.

이 사고를 계기로 삼성종합건설은 당시 법률상 최고 기간이었던 6개월 영업정지를 당했고 삼성종합건설 사장 등 사고 관련자 16명이 구속되었습니다.(그 후 재판에서 회사 임원진급 6명에게는 과실치사상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아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사고의 여파로 삼성종합건설은 삼성건설로 이름을 바꾸다 결국 1996년 삼성물산에 흡수되어 지금의 삼성물산-건설부문이 되었습니다.

참사의 영향으로 엄청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 이 상황을 타계하고자 한 그룹의 자구책이었으나 이미 부산지역에서는 쓰레기 기업으로 낙인이 찍혀 버렸습니다.

부산 삼성의료원, 부산 삼성 실버타운 등 계획되었던 것들이 모두 무효화가 되어버릴 정도로 후폭풍이 상당했습니다.

결국 부산지역에서는 더 이상 삼성이 건설 사업을 할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긴 세월이 지나고 사고의 참사도 사람들 속에서 서서히 잊혀질 때쯤 2010년대 초중반 삼성물산이 부산에 래미안해운대 라는 이름으로 처음 들어오게 됩니다.

곧바로 2014년 장전 래미안이 분양 대박을 터트리면서 긴 시간을 깨고 삼성물산의 래미안이 부산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주택정비사업인 재건축, 재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 거죠.

연지2구역인 래미안 어반파크, 거제2구역 레이카운티, 온천2구역 동래 래미안아이파크, 온천4구역 래미안 포레스티지 에 이어 명륜2구역인 래미안 마크더스위트 까지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부산의 래미안타운이 된 래미안벨트



삼성물산의 전략 방향답게 부산 내륙 중심에 래미안 벨트라 불리는 래미안 타운이 생긴 것이죠.

구포 무궁화호 참사는 상관이나 없는 듯, 역시나 래미안이라는 브랜드의 파워답게 지금은 부산에서 가장 핫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물산 건설부문 입장에선 부산은 조심스러운 곳이라 생각이 듭니다.

구포 무궁화호 참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에게는 잊지 못할 역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 브랜드 중 하나인 삼성물산의 래미안


부산 내륙의 래미안 벨트를 시작으로 부산에서 더 많은 주택사업에 뛰어들지,

부산을 넘어 전국적으로 건설부문 사업을 확장할지,

아니면 기존의 방침대로 수도권에 집중하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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